독립운동가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말하다
영화 <영웅>은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사 뜻 : 의로운 일에 몸을 헌신한 사람)를 다룬 영화로 대한민국에서 2009년부터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아오던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단한 위인입니다. 그리고 그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고 있지만 그 이후 안중근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영화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이라는 거사를 준비하던 때를 시작으로 사살하는 순간, 그리고 중국 뤼순 형무소에서의 모습과 사형 판결을 받고 형이 집행되는 순간까지의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담은 영화입니다. 저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단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로 기억되는 '안중근 의사'도 평범한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어머니의 아들이자 동료들의 친구일 텐데 그가 어떻게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어떻게 순국을 하게 되었는지가 많이 궁금했습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 직접 가서 보면서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감정이 어떠하였는지 너무나 느껴졌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받아 본 어머니께서 보내신 편지를 읽는 장면이 나올 때는 너무나 힘든 시기를 살아간 우리의 조상들의 한과 결의가 느껴졌고, 아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안타깝지만 아들이 나라의 위해 큰 일을 했다는 것과 그것으로 의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감히 제가 헤아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이 영화를 통해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영화 <영웅> 줄거리와 결말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을 맺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전투 중에 사로잡은 일본군 인질을 동료들은 죽이려고 하지만 안중근은 끝내 풀어주고 맙니다. 하지만 안중근 일행들의 아지트를 알고 있는 살려준 일본군은 대군들을 몰고 와 독립군을 괴멸시키게 됩니다. 한편 '설희'는 일본군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그녀 역시 독립군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이토 히로부미' 곁에서 시중을 들며 독립운동을 위해 스파이를 자처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러시아에서 책략을 도모하는 독립투사들과 히토 히로부미 곁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독립군들에게 모스 부호로 전달하는 설희. 설희의 제보 덕분에 독립군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식민 계획(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하겠다)을 알게 되고, 이토 히로부미가 곧 중국 하얼빈역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설희는 안중근 일행보다 이토 히로부미를 먼저 죽이려 시도하지만 일본군들에게 들키고 되고 설희는 기차에서 투신을 하게 됩니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던 '안중근 의사;는 미리 준비한 총으로 그를 죽이는 데 성공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으로서는 경사스러운 사건이지만 일본에게는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였고, 그에게는 사형선고가 내려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인과 가족들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항소를 준비하지만, 안중근의 어머니는 항소하는 것 자체가 일본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라며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아들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억지스러운 일본의 재판으로 안중근은 사형당하게 되고 현재까지 그의 유해는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기억해야 할 안중근의 실제 삶과 기록
안중근은 1879년 조선 황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배워 스무 걸음 거리에 놓인 동전을 맞힐 만큼 사격 실력에 아주 뛰어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독립운동가 김구의 책 <백범일지>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안중근은 16살의 어린 나이이지만 동학군을 상대로 박석골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면서 우수한 지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일제의 침탈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안중근은 항일무장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하얼빈 거사 당시 대한의군 소속으로 안중근은 참모중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는 일은 군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도착했을 때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알 수가 없어 체념하던 순간, 하얼빈 현지에서 일본인 중 한 명이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을 불렀고, 그가 뒤돌아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중근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즉시 총 3발을 발사했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됩니다. 3발 모두 급소에 맞은 이토 히로부미지만 안중근은 그를 정확히 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나머지 총알 4발을 이토히로부미 주위 4명의 일본인들에게 쏘았습니다. 이토히로부미는 총을 맞은지 30분 만에 사망을 했고 이로 인해 안중근은 러시아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지만 일본의 압력으로 러시아는 안중근을 일본 고등법원으로 송치시키게 됩니다. 안중근을 변호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국제 변호사들이 달려왔지만 일본은 안중근에게 일본 측의 관선 변호사에게 변론을 맡기게 합니다. 억울하지만 시대가 조선에게 불리했던 당시의 안중근은 사형선고를 받고 의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